
2026년 2월 12일 목요일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
명동의 풍경은 매일 비슷하게 반복된다. 한국을 찾은 수많은 외국 관광객들과 내국인들이 뒤섞이고 그들에게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매일 비슷하게 되풀이되는 그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명동의 목요일은 다르다. 목요일의 풍경이 다른 것은 명동역의 10번 출구를 나가 세종호텔 앞에서 만나는 집회가 그 날 있기 때문이다. 세종호텔 앞의 집회는 목요일이면 어김이 없다. 부당한 해고로 세종호텔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의 집회이다. 2026년 2월 12일 목요일에도 지나는 사람들에게 세종호텔 투쟁문화제임을 알리는 이 집회는 어김이 없었다. 노동자들은 해고자의 원직복직을 위해 힘을 모아 싸우고 있다. 집회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으로 보인다. 겉으로 보이는 싸움의 현장은 그렇다.
이 집회의 현장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과학은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의미의 깊이로 가는 길을 뜻하지 않게 과학이 열어줄 때가 많다. 영국의 물리학자 브라이언 콕스는 아인슈타인이 예닐곱살이었던 어린 시절의 얘기를 소개하며 그 얘기를 아름다운 얘기라고 전한다. 세종호텔의 집회는 그 얘기를 떠올리게 한다. 얘기의 내용은 간단하다. 그 나이 때 아인슈타인이 아버지에게서 나침반을 선물 받았다는 것이다. 나침반의 바늘은 항상 북쪽을 가리킨다. 나침반을 받으면 대부분은 그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관심을 두지만 아인슈타인에게 그것은 우리가 볼 수는 없지만 나침반이 북쪽을 가리키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얘기였다. 아인슈타인은 나중에 이때의 경험이 자연을 주의 깊게 살피고 정말 주의를 기울이면 운 좋게도 깊게 숨겨진 무언가를 엿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나침반의 바늘을 통하여 방향을 알려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자기장이란 것을 알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아름다운 얘기는 그의 시각으로 이 집회를 보면 노동자들의 싸움이 얼마나 남다른 것인가를 더욱 깊이있게 알게 된다고 말한다. 집회는 마치 나침반의 바늘처럼 우리가 인간의 이름으로 만들어 가야할 세상의 방향을 알려준다. 그 방향엔 부당한 해고가 없고 쫓겨난 노동자들이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서 있다. 그 방향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세상의 자기장이다. 집회는 세상을 지탱하며 그 방향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 바로 노동이라고 말한다. 노동은 말하자면 이 세상의 자기장이다. 노동을 통하여 그 자기장을 읽어낼 수 있는 몸을 갖게 된 노동자들은 다른 방향으로 갈 수가 없다. 다른 방향은 잘못된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 노동을 흔들어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자기장을 흔들어 삶의 방향을 교란시키는 행위이다. 자본의 탐욕이 그 자기장을 흔든다. 노동자들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직장으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자기장을 안정시켜 우리 삶의 방향을 지키려 한다. 아인슈타인의 얘기가 아름다운 얘기라면 세종호텔의 집회는 그런 측면에서 아름다운 행위이다.
이소선합창단은 이 아름다운 노동자들의 집회에 노래로 함께 했다. 처음 부른 노래는 <이름>이었다. 노래는 “어둠 속 빛보다 찬란”한 것이 있으며 그 이름의 주인공이 바로 ‘노동자’라고 알려준다. 노래는 그 노동자가 “역사의 줄기”이자 “미래의 이름”이라 말하며 우리 삶의 방향을 어제부터 내일까지 관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우리의 세상은 모두 노동이 알려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노래의 앞에 자본의 욕심이 흔들어 놓은 사회의 방향을 바로 잡기 위한 싸움에 나선 노동자들이 앉아 있었다.
합창단이 부른 두 번째 노래는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였다. 노래는 자기장을 만드는 노동의 힘이 뭉쳐서 이룩하는 싸움으로 이루어지며 그 싸움이 패배하는 법은 없다고 말한다. 아니 패배해선 안되는 것이리라. 돈에 미혹되어 삶이 방향을 잃는 세상이 우리의 미래가 되어선 안된다. 노동자들은 방향을 흔드는 자본에 맞서 뭉치고 단결하여 싸우고 있다.
앵콜이 있었고 합창단은 앵콜에 응했다. 앵콜곡은 <해방을 향한 진군>이었다. 해방은 노동이 자본의 질곡을 걷고 걸어가야할 방향이었고 그 끝엔 노동의 가치가 의미를 찾는 세상이 있다. 노래는 그것이 “노동자의 하늘”을 여는 일이라고 말한다. 노래가 흐를 때 집회의 자리에 쫓겨난 세종호텔의 노동자 고진수가 앉아 있었다. 한동안 그는 고공에 올라 싸웠다. 새처럼 고공의 하늘에서 길을 구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나침반에 의지해야 자기장의 방향을 읽어낼 수 있지만 새들은 몸으로 자기장을 읽어내 방향을 짚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길하나 보이지 않는 허공의 하늘에서도 새들이 길을 잃지 않는 이유이다. 고공에 오른다는 것은 어떤 이에겐 극한의 투쟁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은 “노동자의 하늘”에서 길을 찾는 행위이다. 그곳에서 길을 찾으려면 새처럼 고공에 오를 수밖에 없다. 노래가 그 싸움을 말했고 노래의 앞에 고공에 올라 길을 찾았던 노동자가 앉아 있었다.
겨울 철새들이 자기장이 짚어주는 방향을 길잡이 삼아 올겨울에도 이 땅의 강과 들판을 찾아왔다. 수천 킬로미터의 아득한 거리를 날아오면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우리 모두 새들에게서 아름다운 비행을 본다. 세종호텔의 노동자들이 길고 오랜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들 또한 허공에서 길을 찾아내는 새들이다. 보이지 않는 길을 몸으로 감지하며 방향을 놓치는 법이 없다. 이소선합창단은 허공을 날아가고 있는 노동자들의 비행에 노래로 함께 했다. 잠시 목요일마다 명동에서 열리는 노동자의 하늘을 노래가 함께 날았다.







































































































